지난 10일 서울 강남구 앤드마크 사옥에서 배우 장영남의 '일타 스캔들' 종영 라운드 인터뷰가 열렸다. 이 드라마에서 거의 유일하게 '코미디'가 없는 캐릭터를 연기해야 했던 장영남은 극중 장서진과 달리, 이제 열 살이 된 아이가 있는 '왕초보 엄마'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캐릭터를 맡으면서도 본인과는 너무 결이 달라 불편함을 느낀 적도 있지만, '배우'이기 때문에 잘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했단다.
장영남이 바라본 장서진은 가정 형편이 어려운 가운데 '더러운 꼴'을 많이 봤고,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악착같이 노력한 인물이었다. 어디서든 누구에게든 딱히 굽히지 않는 것처럼 꼿꼿해 보여도, 실은 열등감이 심하다고 생각했다. 장영남의 표현을 빌리면 "열등감이 수아 엄마(김선영)보다 많은 캐릭터"였다. 한편으로는 참 외로운 캐릭터였다. 알코올 의존증이 있는 설정도 그의 외로움을 나타내는 거라고 봤다.
장영남은 "술 먹고 있을 때, 장서진이 사실 저렇게 외로운 사람이라는 걸 보여준다고 본다. 아들 껴안으면서 '너밖에 없다'고 하고, 남편에게 술 취해서 전화하는 것, 혼자 술 마시고 앉아 있는 것… 개인적으로 그런 장서진이 제일 마음에 들고, 그런 게 캐릭터 만드는 데 도움이 됐던 것 같다. 그리고 이 여자 알코올 중독이다. 취한 듯 안 취한 듯 선을 과하지도 넘치지도 않게 (표현)한 건 괜찮아 보였다"라고 말했다.
전문직이자 법조인인 변호사 역을 맡았기에, 법무부 장관 역이었던 '악마판사'가 자연스레 언급됐다. 직업이나 성격 면에서 비슷해 보여도 분명히 다른 캐릭터였기에 표현법에 특히 신경 썼다. 장영남은 "'악마판사' 때는 강직하고 대쪽 같다는 걸 키워드로 가져갔다면, (장서진은) 차분함, 부드러움, 침착함이라는 키워드를 가져갔던 것 같다"라고 운을 뗐다.
이어 "이 엄마도 되게 세지 않나. 외형은 최대한 부드럽게 보였으면 했다. '악마판사'는 겉을 봐도 세 보이고, '아, 저 사람 불편해 보여' 하는 느낌이 들었으면 했는데. 그렇게 차별점 둔 게 잘 표현됐는진 모르겠지만, 신경질 나서 화를 내더라도 (장서진은) 대체로 좀 눌러서 갔다. '많이 표현하지 말자, 침착함을 유지하자, 들키지 말자, 네가 여기서 화내면 지는 거야, 네 감정을 보이지 마, 네가 침착해야 주변도 침착해질 수 있어' 하는 캐릭터였다"라고 설명했다.
입시에 혈안이 된 학원가를 배경으로 하고, 첫 화부터 스릴러적인 요소가 등장하긴 했으나 '일타 스캔들'은 비교적 '밝은' 드라마였다. 장서진은 거의 유일하게 극 중에서 '코미디'가 없는 캐릭터였다. 장영남은 "사실 저는 걱정과 의심을 많이 했다. 저희 작품이 로맨틱 코미디이지 않나. 전도연 선배님 얼마나 예쁘냐, 샤방샤방하고. 수아 엄마도 활기차고. 근데 (제가) 정말 맑은 물에 기름 한 방울 떨어뜨리는 느낌이더라"라고 해 폭소를 유발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해도 되는 건가? 내가 망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 많이 들었는데, 그래도 위안받은 부분은 저희 드라마에는 다양한 삶이 나왔다는 거다. 로코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 장르적인 부분도 많이 섞여 있어서 그나마 (제가) 숨 쉴 수 있지 않았나"라며 "희로애락 중 저는 하나 다른 캐릭터일 뿐이라고 생각했다"라고 부연했다.
장영남은 '일타 스캔들'에 관해 "우리 드라마가 하고자 했던 건 따뜻함이었던 거 같다. 다양한 군상과 사건이 있지만 아이들의 성장 드라마이기도 하고 어른들의 성장 드라마이기도 하다"라며 "공부를 잘해야만 꼭 행복하게 사는 건 아니지 않나, 내가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일을 찾는 것 또한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걸 생각하게 한다"라고 밝혔다.
결말은 어떻게 봤을까. 이 질문을 받았을 때 장영남은 "급한 감은 없지 않지만 전 괜찮았다"라고 답했다. 그는 "여기서 가장 결정적인 건, 그 장서진이가, 선재 엄마가 그래도 마음을 고쳐먹어서 나아졌다는 걸 살짝 보여준 거다. 이제 타협하려고 노력한다는 부분을 보여줬다. 제가 생각할 때 장서진은 여태까지 겪은 일보다도 훨씬 더 정신적으로 빡세게 살 것 같다"라고 예상했다.
장영남은 "남편하고 '여보, 밥 됐어요. 나오세요' 하는 건 전혀 아닐 것 같고 이제는 동지이자 동료로서 서로 격려하고 응원해줄 것 같다. (갑자기) 한집안에서 알콩달콩 살진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장서진은 엄청 노력하고 있다. 이후 모습은 더 힘들 것 같다. 그래도 술은 끊지 않았을 거다"라며 "너무 단편적이고 급작스럽게 끝나서 아쉽다는 말씀을 하시지만 우리 삶이 전부 다 순간이다. 어느 순간 기분 나빴다가 불편해지기도 하고. 그런 지점에서 이 가족이 행복한 모습을 보이는 건 장서진이 노력하는 거라고 본다"라고 전했다.
이제는 엄마가 TV 안에서 다양한 사람을 연기한다는 것을 어느 정도 인식했다는 초등학생 아들은 '일타 스캔들'을 장영남과 함께 봤다. 아들의 감상을 물었더니, 장영남은 "선재 쪼는 장면을 보고 '나도 곧 그렇게 되겠지'라고 하더라"라고 답해 일동 폭소가 터졌다. '엄마 저 형한테 왜 그렇게 화내는 거야?'라는 질문도 들었다고.
교육관이나 아이를 대하는 태도는 다르지만, 드라마 속에서나 현실에서나 '워킹맘'인 것은 같다. 장영남은 "요즘은 엄마가 일하는 걸 오히려 애들이 더 좋아한다고 하더라. 근데 저희 애는 열 시 반만 되면 전화한다. 늦게 들어가면 '엄마, 어디야?' 하는데 여덟 살 때까지는 (안 오면) 울었다. 그래서 뒤풀이를 못 갔다. 9살 때부터는 울지는 않는데 '어디야? 몇 분 걸려?' 하고 아직도 물어본다"라고 말했다.
온전히 아이에게 시간과 기력을 쏟을 수 없는 것을 염려하는 건 장영남도 마찬가지란다. 그는 "저도 과외를 시키긴 한다. 수학이랑 영어 하는데 저는 선생님한테 맡기면 되는 줄 알았다. 그래도 엄마가 검사하고 확인해야 하더라"라며 "제가 어느 날은 봐주는데 일이 몰려 있으면 어느 날은 못 봐주고 (이렇게) 규칙적이지가 않으니까 아이가 혼란스러운 거다"라고 털어놨다.장영남은 "직장 생활을 하는 분이면 부모님이 몇 시면 들어온다 하고 (아이에게) 기억되는 시간이 있지 않나. 근데 저는 5일 중 하루 이틀 나가다가 갑자기 7일 나가기도 하고 이게 들쑥날쑥하니까 (아이는) 정서적으로 약간 불안한가 보다. 학습하는 것도 꾸준하지 않아서 조금 놓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어떻게 할까. 죽겠다. 갈수록 더 어렵다는데… 1등이 돼야 한다는 걸 원치는 않는다. 자존감이 떨어지지 않게, 친구들 앞에서 못해서 놀림당하지 않게 중간만 하라고 하는데 중간이 제일 어려운 것 같다"라고 말했다.
4%로 시작해 17%로 마무리한 '일타 스캔들'의 인기를 체감한 적은 있을까. 장영남은 "우리 아들 데리러 초등학교에 가는데, 아이랑 동갑내기인 한 친구가 저를 보고 툭툭 건드리더니 '저희 엄마가 일타 스캔들 아주 잘 봤어요' 하더라. 아이들이 얘기하는 걸 보면 연령대 불문하고 잘될 수밖에 없는 비결이 이거였구나 싶다. 사실 드라마 되게 많이 했는데 시청률이 이렇게 많이 나온 게 처음이다. 저한테는 진짜 고무적이고 너무너무 기분 좋다. 올해 2023년을 '일타'로 시작하면서 큰 복 받은 기분이다"라고 강조했다.
"(시청자들이) 큰 사랑 주셔가지고 이루 말할 수 없이 기쁘고 이렇게 정말 좋은 땅과 좋은 토양과 큰 나무의 열매로 매달려 있을 수 있게 해줘서 너무너무 감사드려요. 덕분에 너무 행복했어요. 우리 팀도 너무 사랑하고요. '일타 스캔들'은 저에게는 참 의미가 깊은 작품이에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지만 조금 따뜻한 이야기라고 해야 할까요. 따뜻한 결말 통해서 여러분들이 조금이라도 힐링하셨으면 좋겠어요. 빡빡한 이 세상에 쉬어가도록."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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