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스럽지만 현명한 할머니 연기
언어 넘어 보편적인 정서 자극
로이터 “재치있고 센세이션한 배우”
전도연 “멋지고 자랑스럽다”
문 대통령 “끊임없는 열정에 경의”
25일 저녁(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93회 아카데미영화제에서 <미나리>로 여우조연상을 받은 배우 윤여정이 트로피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기생충>이 보여줬던 한국영화의 힘이 언어 장벽을 뛰어넘은 노배우의 유려한 연기로 다시 한번 오스카 무대를 압도했다. 올해로 연기 인생 55년차의 배우 윤여정이 26일 한국인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거머쥐자 국내외의 축하 메시지가 쏟아졌다. 특히 윤여정을 역할모델 삼는 후배 여배우들이 자신의 일처럼 큰 기쁨과 존경을 표시했다. 배우 김혜수는 인스타그램에 윤여정이 과거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누나>에서 “내가 처음 살아보는 거잖아. 나 67살이 처음이야”라고 했던 대사를 인용하면서 축하 인사를 건넸다. 2007년 칸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던 배우 전도연도 소속사를 통해 “모두가 믿어 의심치 않았던 수상 소식이다. 멋지고 자랑스럽다”고 전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끊임없는 열정으로 다른 문화에서 살아온 분들에게까지 공감을 준 연기 인생에 경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외신도 앞다퉈 아시아 배우의 두번째 오스카 여우조연상 수상 소식을 알렸다. 미국 언론인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25일(현지시각) 수상 발표 직후 ‘<미나리> 윤여정이 한국 배우 최초로 오스카 수상의 역사를 썼다’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이 매체는 “한국의 윤여정이 일요일 밤 미국영화 데뷔작인 정이삭 감독의 <미나리>에서 장난스럽지만 현명한 할머니 순자 역으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며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고 전했다. <뉴욕 타임스>도 윤씨의 수상 소식과 함께 “내가 당신들보다 좀 더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한 그의 수상 소감을 전했다. <로이터> 통신은 “윤씨는 한국에서 수십년 동안 센세이션한 배우였고, 재치있고 시사점이 많은 역할들을 가장 자주 연기했다”며 그의 수상 소식을 전했다. 일본 언론도 아시아계 여성 영화인들이 조연상과 감독상 등 주요 상을 수상한 데 큰 의미를 부여했다. <아사히신문>은 “<미나리> 윤여정씨의 연기력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며 “감독상과 여우조연상 등 아시아계 여성 2명이 아카데미상을 수상하는 역사적인 시상식이 됐다”고 덧붙였다. 평론가들은 한국어로 된 연기에 대해 아카데미가 연기상을 줬다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전찬일 평론가는 “지난해 한국어로 된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에서 작품상·감독상을 받았지만, 사실 연기로 상을 받기는 훨씬 어렵다”며 “이런 점에서 윤여정의 수상은 지난해 <기생충> 수상 못지않게 역사적인 일”이라고 했다. 김형석 평론가도 “언어 장벽을 허물려는 시도는 지난해 <기생충>에서도 확인됐지만, 연기가 상을 받은 건 <미나리>에서 가능했다. 그만큼 언어를 넘은 보편적 연기를 했기 때문이라고 본다”고 했다. 윤여정의 이날 수상은 5년 전 아카데미 시상식의 연기상 후보가 모두 백인이었던 점에 견주면 엄청난 변화라 할 만하다. 2016년 수상 후보 모두가 백인이어서 에스엔에스를 중심으로 ‘오스카는 너무 하얗다’(#OscarsSoWhite)라는 해시태그 운동이 벌어지는 등 아카데미의 오랜 백인우월주의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2018년 미국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가 아카데미 신입회원의 구성에서 흑인, 아시아계와 여성의 비율을 획기적으로 늘렸다. 매년 10%대를 맴돌던 아시아계와 흑인의 비율을 38%로 늘렸고 여성 비율도 49%로 절반을 차지하게 됐다. 윤여정의 여우조연상 수상은 이런 변화에도 영향을 받은 것으로 풀이된다. 김형석 평론가는 “지난해 <기생충>의 4개 부문 수상과 이번 윤여정의 여우조연상 수상은 아카데미의 자기혁신이 반영된 것”이라며 “<노매드랜드>의 클로이 자오 감독이 아시아 여성 감독으로 첫 감독상을 수상하는 등 미국만의 영화제에서 벗어나려는 변화가 돋보였다”고 짚었다. 오승훈 최현준 김소연 기자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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