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서로에게 이 ‘사랑의 언어’로 말하는 법을 배웠으면 좋겠어요. 특히 올해는요.”
1980년대 한인 가족의 미국 아칸소 정착기를 담은 자전적 영화 ‘미나리’로 제78회 골든글로브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재미교포 2세 정이삭(리 아이작 정‧43) 감독의 수상 소감이다.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HFPA)가 주관하는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한국계 감독의 영화, 한국어 영화가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건 지난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 이어 역대 두 번째다. '미나리'는 지난해 2월선댄스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돼 심사위원대상‧관객상을 받은 이래 미국 안팎에서 수상한 트로피가 이로써 총 75관왕에 이르게 됐다.
미국 한인가족 그린 영화 '미나리'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수상
'기생충' 이어 한국계 2년 연속
"미국어, 외국어 넘은 진심의 언어"
한인 가정의 미국 정착기를 담은 영화 '미나리'가 28일(현지시간) 미국 양대 영화상인 골든글로브에서 최우수외국어영화상을 받았다. [연합뉴스]
이번 시상식은 코로나19로 참석자를 최소화해 미국 현지시간 2월 28일 캘리포니아주 비버리힐스 비버리힐튼 호텔과 뉴욕 록펠러센터 레인보우룸에서 나눠 비대면 개최됐다. 외국어영화상 발표자 배우 갤 가돗이 ‘미나리’를 호명한 순간, 자택에서 화상으로 시상식에 참여한 정 감독은 곁에서 “내가 기도했어!(I prayed) 내가 기도했어!(I prayed)”라며 품에 뛰어든 어린 딸을 끌어안았다. 그는 “모든 ‘미나리’ 패밀리와 스티븐(스티븐 연), 예리(한예리), YJ(윤여정)…” 등 제작진과 가족에 감사하며 “여기 함께한 저의 딸이 제가 이 영화를 만든 큰 이유”라며 감격했다. 앞서 골든글로브 후보 사전 인터뷰에서 그는 이번 영화에 자신이 어릴 적 미국에 찾아온 외할머니(극중 윤여정이 연기)와 가족의 경험담을 그린 이유를 “딸이 7살이 됐을 때 딸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했고 딸의 나이 때 느꼈던 것을 되새기게 됐다”고 설명했었다.
28일(현지 시간) 코로나19로 비대면 개최된 제78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자전적 영화 '미나리'로 외국어영화상을 차지한 재미교포 정이삭 감독이 자택에서 딸을 안고 수상 소감을 말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날 수상 소감에서 그는 “‘미나리’는 가족에 관한 이야기고 그들만의 언어로 이야기하려고 노력하는 가족의 이야기”라 했다. “그 언어는 단지 미국의 언어나 그 어떠한 외국어가 아니라 진심의 언어(Language of Heart)다. 저 스스로도 그 언어를 배우려고 노력하고 물려주려고 한다”면서 ‘언어’란 단어를 재차 강조했다. 이는 ‘미나리’가 한국어 대사로 인해 작품상 후보에선 배제된 것을 의식한 발언으로도 해석된다.
‘미나리’는 브래드 피트의 영화사 플랜B가 제작하고 정 감독이 연출을, 재미교포 스티븐 연이 주연 겸 프로듀서를 맡은 미국 영화임에도 대사의 50% 이상이 영어가 아니면 외국어영화란 골든글로브 규정 탓에 외국어영화로 분류돼 미국 현지에서 논란이 된 터다. 골든글로브 후보 명단에는 ‘미나리’의 국적이 미국으로 표기돼있다. 이에 뉴욕타임스는 “골든글로브를 주관하는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가 바보같이 보이게 됐다”고 꼬집었다.
美영화에 외국어영화상 NYT "골든글로브 바보같아"
재미교포 2세 정이삭(리 아이작 정) 감독이 자전적 경험을 되살려 1980년대 미국으로 이민 온 한국인 가족의 여정을 그려낸 영화 '미나리(MINARI)'. 스티븐 연, 한예리, 앨런 김, 노엘 케이트 조, 윤여정, 윌 패튼 출연. 국내에선 오는 3월3일 개봉한다. [사진 판씨네마]
역시 비영어 대사가 주를 이루지만, 백인 감독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가 연출하고 브래드 피트 등이 주연한 ‘바벨’은 골든글로브 작품상을 수상했고, 같은 조건의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브래드 피트 주연 영화 ‘바스터즈:거친 녀석들’도 작품상 후보에 오른 바 있다. 반면 지난해 중국 이민자 가족을 그린 ‘페어웰’에 이어 올해 한국 이민자를 그린 ‘미나리’를 외국어영화로 분류한 것은 아시아계에 대한 인종차별이란 비판까지 나왔다. LA타임스는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 87명 회원 중 흑인이 한 명도 없음을 지적하며 골든글로브가 시대에 뒤쳐졌단 의미의 해시태그 운동(#타임스업‧time's up)이 소셜미디어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LA타임스는 ‘미나리’의 수상이 발표되자마자 “‘미나리’가 골든글로브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다. 맞다, 그것은 미국영화다”라고 골든글로브를 비꼬는 기사를 냈다. USA투데이는 “올해 골든글로브의 가장 골치 아픈 행보 중 하나는 호평받은 ‘미나리’(한국 가족에 관한 매우 미국적인 영화)를 외국어영화 범주에 넣은 것이지만 어쨌든 이 영화는 그 부문을 수상했다”고 보도했다.
"한국전쟁 후 조개 캤던 외할머니…자랑스러워했을 것"
재미교포 2세 정이삭(리 아이작 정) 감독이 자전적 경험을 되살려 1980년대 미국으로 이민 온 한국인 가족의 여정을 그려낸 영화 '미나리(MINARI)'. 스티븐 연, 한예리, 앨런 김, 노엘 케이트 조, 윤여정, 윌 패튼 출연. 국내에선 오는 3월3일 개봉한다. [사진 판씨네마]
CNN은 앞서 정 감독의 인터뷰를 인용해 제작비 조달을 우려한 그가 만일을 대비해 더 많은 영어가 포함된 대본을 쓰기도 했지만 한인 프로듀서의 지지로 한국어 대사를 고수할 수 있었다면서 “할머니가 아직 살아있다면 제가 타협하지 않고 한국어로 영화를 찍었다는 사실에 매우 자랑스러워했을 것”이라는 정 감독의 말을 전했다.
26일 한국 취재진과 화상 기자회견에서 정 감독은 인천 송도 한 대학(유타대 아시아캠퍼스) 영화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할머니를 추억한 일화를 밝히기도 했다. “사무실 밖으로 갯벌에서 조개 캐는 할머니들이 보였다”면서 “저희 할머니는 한국전쟁에서 할아버지를 잃고 홀로 어머니를 키우면서 생계를 위해 갯벌에서 조개를 캤다. 사무실에서 밖을 보면서 ‘할머니가 안 계셨다면 내가 여기서 이렇게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을까?’ 생각했다”고 울컥하는 모습을 보였다.
4월 아카데미, 윤여정 한국배우 최초 후보 오를까
정 감독은 14년 전 단돈 3만달러의 제작비로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르완다어로 현지 대학살의 상흔을 담은 데뷔작 ‘문유랑가보’(2007)를 만들어 칸영화제 주목할만한시선 부문에 초청되며 주목받아왔다. 자전적 가족사를 담은 ‘미나리’는 오는 4월 열릴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로도 거론된다. 15일로 예정된 후보 발표에선 정 감독의 각본상·감독상 후보 지명에 더해 외할머니 순자 역으로 “유머러스하고 사랑스럽다”는 찬사와 함께 이미 20개 넘는 연기상을 휩쓴 배우 윤여정의 여우조연상 후보 지명도 점쳐진다. 아카데미 연기상 부문의 예고편으로 꼽히는 미국배우조합상(SAG)에서 '미나리'는 윤여정이 여우조연상, 출연진 전원이 앙상블상, 스티븐 연이 남우주연상 등 3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윤여정이 아카데미 후보에 오를 경우 한국 배우 최초 기록이 된다.
‘미나리’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수상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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